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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 양다솔, 2021 (eBook)

by Ditmars 2025. 10. 16.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양다솔, 2021 (eBook)

 

 행자에게는 한 줄의 명심문이 있다. '네, 하고 합니다'다. 그것으로 내가 가진 의지를 내려놓는 연습, 내가 아닌 존재로 살아보는 연습을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가 아닌,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불교의 법은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곳에서 싫은 상대를 만난다면 그는 원수가 아니라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불보살, 즉 은인으로 불렀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자신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어떤 습관에 지배받는지 살펴보아야 했다. 내가 행동을 바꿔야 한다면 누가 나를 싫어해서가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여야 했다. '사람들은 왜 나를 싫어하지?'에서 '나는 왜 이 행동을 하고 싶지?'로 질문이 바뀌는 데는 꼬박 2년이 걸렸다. 그곳에서 '그냥' 살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매 순간 기억해야 했다. 

 행자는 누가 보지 않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 순간 자신에게 증명해야 했다. 행동 하나에 마음을 담아야 했다. 그래서 이불을 반듯이 접고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빨래를 예쁘게 널고 마음을 다해 마당을 쓸고 밥을 하고 씨앗을 심고 예불을 외고 절을 하고 낮잠을 참아내고 배고픔을 견뎌내는 것이었다. 거기 있는 모두가 수행자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니까 만인의 불보살이자 아주 괴상한 인물인 나에게 그곳은 가장 안전한 도망처이자 가장 훌륭한 연습 공간이었던 것이다.

<p.61>

 

 처음엔 그 돈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할 수 없었다. 일한 만큼 받거나 받은 돈보다 더 일하는 것 외에는 잘 알지 못하고 알 생각도 없는 김한영 여사가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였을지. 아니, 어쩌면 나의 어머니에게 수학 공식만큼 분명할지도 몰랐다. 10년. 적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녀의 육십 인생에서 적어도 10년을 나에게 준 것이었다. 정작 당신은 평생 누구에게도 받은 적 없는 시간을 나에게 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내가 월세를 내느라 덜 허덕이게 하고, 조금은 사고 싶은 것들을 사고, 삶에 너무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p.81>

 

 살아온 사람은 많지만 쌓아온 사람은 흔하지 않으므로 어느 면에서 나는 그녀를 결코 이길 수 없었다.

<p.487>

 

 나에게 최고의 여행 기념품은 일기장이다. 나 양다솔은 오로지 여행을 할 때에만 일기를 쓴다. 나에게 일기란 단순한 기록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이벤트로 인해 관찰되고 경험되는 내면과 외면, 시간과 공간을 콜렉트하는 행위다. (...)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일기란 여행의 결과물에 가깝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한 권씩,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듯 일기들은 나의 책장에 장식된다.

<p.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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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이 책을 알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보통 책을 선택하는 과정은 이렇다. 어떤 책을 읽다 그 책에서 인용되거나 소개된 책들 중 흥미가 가는 책을 스마트폰 메모에 적어놓는다. 그리고 나중에 도서관에 가거나 책을 구매할 때 그 메모에 있는 책들 중에서 골라서 읽는 식이다. 이 책 역시 그 메모 안에서 발견하였으므로 분명 내가 읽은 어느 책을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책에 대해서도, 작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무언가 대단한 걸 알게 된 건 아니었다. 작가의 살아온 삶과 그녀가 갖게 된 생각들 중 아주 일부분을 알게 되었고, 작가에 대한 관심도 조금 얻게 되었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솔직한 나의 감상은 '책의 전반부는 좋았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 뭐랄까 나한테는 정식 등단을 한 건 아니지만 에세이 작가로서 이름이 조금 알려진 이런 작가들이 마치 출판계의 인디 밴드 같이 느껴지는데 최근 출판계의 인디 작가들의 글의 경향이나 소재 등은 이렇구나, 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해도 자신의 삶이 우선 되어야 할까? 영화 <소공녀>에서 주인공은 벌이가 줄어들어도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담배는 포기하지 않고 대신 집을 포기한다. 삶의 바탕이 되는 의식주를 해결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보다 취향을 존중하고 현재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부모님으로부터 전세 자금이라는 큰돈을 지원받아 덕분에 좋은 집에서 편하게 살고 있다면 회사 생활이 힘들다는 이유로, 다른 도전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지. 당장 갚아야 할 대출이 있다면 아침에 늦잠 자서 택시를 타는 일도, 퇴근 후 오늘 유독 힘들었다며 치킨을 시키는 일도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렇다고 백날 안 쓰고 아끼고 참기만 한다면 그것을 삶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여러 생각이 든다. 

 

 최근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어느 커뮤니티의 짤을 본 적이 있다. '트렌드 따라가다 망한 내 주변 30대 후반 40대 초반' 이라는 제목의 글인데 욜로족, 딩크족, 파이어족, 회사가 전부가 아니라며 퇴사한 사람들 등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우리 시대를 관통한 삶에 대한 트렌드대로 살아온 사람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적은 글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글쓴이는 트렌드를 좇았던 사람들은 지금 싹 다 빈털터리가 되어 망했고 트렌드 안 따라가고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사이에 결혼한 사람들은 아이도 낳고 저축해서 집도 사고 회사에서도 꽤 높은 위치에 올라 현재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근거가 없는 글이겠지만 비슷한 또래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공감도 되고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어쨌든 남들 다 할 때 비스무리하게 쫓아만 가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는 있다는 사실이다. 남들 대학 갈 때 대학 가고, 취직할 때 취직하고, 결혼할 때 결혼하고, 아기 낳을 때 아기 낳고, 저축할 때 저축하고, 집 살 때 집 사는 것. 우리 부모님들이 얘기하고 강조했던 그런 평범한 삶의 궤적을 충실하게 따르면 최소한 평범한 삶은 살 수 있다는 것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남들 취직할 때 퇴사하고, 남들 결혼할 때 안 하고, 남들 저축할 때 다 써버리는 삶을 한 때는 쿨하게 여기고, 남들과 똑같이 아등바등 사는 삶을 비웃기도 했는데 요즘 분위기는 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내가 너무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사람마다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다르고 인생에 정답은 없기에 그 누구에게도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안전하고 보장된 행복'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지루하거나 개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