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아이를 낳았다고 다 아버지는 아닙니다. 아버지 노릇을 해야 아버지입니다. 내가 낳은 아이는 나와 같으면서 나와는 또 다른 존재입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개똥밭에서 구르든 불구덩이에 뛰어들든 자기 자식을 위해 끝없이 책임을 지고 사랑을 쏟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무거운 윤리적 무게를 견뎌내야 겨우 아버지가 됩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그렇게 아버지가 됩니다.
<p.19>
나는 언제나 흥민이에게 짧게 핵심만 전달하려 한다. 미주알고주알 훈계하거나 훈수 두지 않는다. 프로에서 뛰는 햇수가 차츰 쌓이면서 점점 더 내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어졌다. 시즌 도중에 흥민이는 스스로 엄격하게 자기를 통제한다. 먹고 싶은 것도 놀고 싶은 것도 철저히 차단하고 오로지 축구 생각만 한다. 그런 이에게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건 부담감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p.31>
선수가 항상 최상의 컨디션에서 경기를 뛰는 것은 아니다. 최상에 가깝게 컨디션을 유지하고자 애쓸 뿐이다. 그래서 평소 실력과 기본기가 중요하다. 기본기가 좋은 사람은 평균 기량으로 경기를 소화할 수 있다. 물론 몸을 다친 상태에서는 그것조차 쉽지 않다. 정신력으로 참고 견디긴 하지만, 그것도 한계치 안에서만 허용될 뿐이다. 신체가 따라주지 않는데 정신력만으로 경기를 계속할 수는 없다. (...)
그러나 운동경기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한계치를 알아야 최선의 것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그 최고치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p.36>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것에 소유당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내가 무엇을 소유한다'라고. 하지만 그 소유물에 쏟는 에너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도리어 뭔가를 자꾸 잃고 있는 것이다.
<p.47>
축구를 잘 습득하려면 운동능력 하나로는 어림없다. 운동능력이라는 재능을 뒷받침해줄 '성실한 태도'와 '겸손한 자세'가 겸비되어야 한다.
<p.49>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마라. 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될지 모르니.' 서산대사의 설야雪野 글귀를 가슴팍에 새기며 살고 있다.
<p.81>
'가치가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항상 시간이 필요하다.'
- 밥 딜런
<p.95>
"인생이란, 문틈 사이로 흰 말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순식간이다."
- 인생여백구과극人生如白駒過隙. <장자>
<p.169>
부모님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 해도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또 다른 인생이 있다. 나는 두 아들 녀석들이 어릴 때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특히 4학년 이전까지 발견하면 나는 성공한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지나 보니 누구한테 들은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는데 무슨 이유에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마음껏 뛰어놀게 했다. "놀아라, 하고 싶은 대로 놀아라." 그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아마도 "놀아라"였을 것이다. 방목이라는 것은 무질서나 내팽개침이 아니다. 자유라는 연료가 마음껏 타올랐을 때 비로소 창의성을 발휘하고 발견할 수 있다.
두 녀석 모두 공을 좋아해서 한번은 이런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네가 축구를 좋아하는데 축구선수가 못되고 일반 학교에 가야 한다면 기술이나 농업을 배울 수 있는 학교에 가거라. 거기서 조금 일찍 하교하고 너 좋아하는 축구를 해라.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잡을 땐 연봉을 가장 조금 주는 데를 찾아라. 연봉 조금 주고 일찍 퇴근하는 곳을 찾아라.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그것이 축구라면 축구를 해라."
나는 내 아이들이 돈을 위해 살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랐다. 그 길에 돈이 따라오면 좋은 것이고, 안 따라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돼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돈만 좇는 삶을 산다면, 그것을 과연 자기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경제적인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 문제로 호되게 고생도 해본 나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속에서 미리 걱정만 하고 전전긍긍하는 삶은 온전한 삶이 아니라.
"네 삶을 살아라. 주도적인 네 삶을 살아라."
남들만큼 돈을 벌지 못할지언정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주도적으로 내 삶의 방향을 세우고, 돈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시간도 벌면서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p.197>
기본기를 닦는 동안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부모님들을 많이 만나왔다. 나에게도 아들을 엘리트 축구팀에 소속시키지 않고 야인처럼 키우면서 불안하고 초조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그때 나는 되묻는다.
"무엇 때문에 불안하고, 무엇 때문에 초조한가?"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가만히 들여다보라. 그건 다 부모의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나야 하고 좋은 성적을 내야 하고 프로선수가 되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하고 돈도 남부럽지 않게 벌어야 하고... 물론 아이를 위한 부모 마음은 다 매한가지다. 아이가 좋은 교육을 받고 탄탄하게 기반을 닦아 평탄한 길을 걷길 바라는 부모 마음을 어찌 욕심이라는 한 단어에 매몰시키겠는가. 하지만 아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해하고 어떤 걸 좋아하는지만 생각하면 불안감과 초조함이 차오를 틈이 없다. 욕심이 차면 그 틈새로 따라 붙는 것이 불안과 초조이다.
"네가 행복하면 됐다."
이 마음이면 충분한 것이다.
<p.222>
나무를 벨 시간이 여섯 시간 주어진다면 네 시간 동안 도끼날을 갈겠다는 링컨의 말처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오랜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본기에 오랜 시간 매달리는 사람을 보며 미련하다고 폄훼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기본기야말로 그 어떤 방법보다 높은 효율성을 지녔따. 더 빨리해보겠다고 무딘 도끼로 백날 나무를 베어봐야 힘만 빠지고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p.224>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뭔지만 생각해봐. 그것이 뭔지 알면 결정은 바로 내릴 수 있다. 네가 원하는 걸로 결정을 해라. 사람은 항상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한다. 네가 보기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이거라고 생각됐다면 망설이지 말고 곧장 그것을 해라."
<p.262>
"백 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 리를 반으로 생각한다." 행백리자 반어구십行百里者 半於九十이라는 <시경詩經>의 구절처럼 우리 삶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삶에 완성이란 없다. 어느 정도 왔다 하더라도 '이제 반을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다시 나아가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성장하려 노력해야 한다.
<p.280>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몇 가지가 있다. 겸손하라, 네게 주어진 모든 것들은 다 너의 것이 아니다. 감사하라. 세상은 감사하는 자의 것이다. 욕심 버리고 마음을 비워라. 마음을 비운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은 없다.
<p.300>
자식의 성공을 내 성공이라고 여기고, 배우자의 성공을 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다 각자 다른 성공이다. 이것은 확연하게 구분 짓고 살아야 한다.
<p.358>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박물관에는 기이하게 생긴 조각상이 하나 있다. 앞머리는 무성한데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없고, 어깨와 양발에는 날개가 달린 벌거벗은 남성의 조각상. 바로 기회의 신 카이로스의 형상이다. 조각상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함이고, 또 발견했을 때 쉽게 잡아챌 수 있게 함이다. 뒷머리가 민머리인 이유는 한번 놓치고 지나가면 다시 잡기 어렵게 하기 위함이며, 어깨와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카이로스의 형상은 인생에서 찾아오는 기회와 타이밍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나에게도 그랬다. 기회는 늘 조용하고 수줍게 찾아왔다 날쌘 토끼처럼 순식간에 도망갔다.
<p.380>
나는 훈련할 때 호되게 혼냈지만 반드시 사후 수습을 했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삶에 대해 자신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이것만은 조심스레 자신할 수 있겠다. 나의 엄한 훈련에도 아이들에게는 '우리 아빠는 나를 사랑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
<p.465>
"두 형제간에 머리를 비교하면 둘 다 망하지만, 두 아이가 지닌 개성을 비교하면 둘 다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p.480>
최근 즐겨 보는 유튜브 <적수다>에서 '힙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다 가수 이적이 이런 말을 했다.
"예를 들어, 땅을 판다고 하면 땅을 파서 물이 나오거나 금이 나오거나 다이아몬드가 나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파서 뒤에 쌓아놓은 것 자체가 큰 작품인 것 같다."
또 같이 이야기하던 작가 성해나의 '심마니들 사이에서는 장화 다섯 켤레가 닳아야 산삼 한 뿌리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는 "산삼 한 뿌리가 힙한 것이 아니라 닳은 장화 다섯 켤레가 힙한 것이다"라는 말도 했다.
우리가 무언가 힙하다고 하는 건 그것에 고유성이 있거나 개성이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꾸준함이 고유성이자 개성이 되는 시대이다. 그리고 꾸준함이 특별함이 되는 이유는 지금 이 시대가 무언가에 꾸준하기 매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변화가 빠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모습은 둘 중 하나다.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해 나가는 삶과 변화와 무관하게 자신의 삶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삶이다. 과거에는 전자의 삶, 즉 유행을 가장 먼저 좇는 것을 힙하다고 생각했으나 현재는 너도 나도 유행을 좇다 보니 '유행을 좇는 것이 유행이 되어' 오히려 그것을 좇지 않는 것이 힙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변하지 않는 것과 꾸준함의 진가를 알아보게 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대만 카스테라, 탕후루, 요아정으로 변해가는 시장 속에서 10년 넘게 꾸준히 꽈배기만 팔고 있는 가게라던지, 수제버거와 마라탕, 냉삼의 유행 열풍 속에서 변하지 않고 돼지국밥만 팔고 있는 노포가 유명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 이는 방송가에서도 비슷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각종 분야의 소위 말하는 '레전드' 들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 역시 자신의 일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해온 그 시간을 우리가 힙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근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변화가 지금처럼 빠르지 않았던 과거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때는 남들과 다르게 변화를 좇는 일이 힙하다고 여겨졌다. 반대로 지금은 변화가 너무 빨라 모두가 그 변화를 따라가느라 바쁘다. 따라서 지금은 남들과 다르게 변화를 좇지 않는 것이 힙하다고 여겨진다.
이 책을 읽으며 그리고 위에서 얘기한 <적수다>를 보며 꾸준함이 힙한 시대가 와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만고불변의 진리인 성실, 노력, 끈기가 변화나 적응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있다가 이제야 사람들이 그 진가를 알아주는 느낌이랄까. 성실, 노력, 끈기가 변화와 적응이 앞에서 활개치며 대중들을 휘어잡고 있을 때조차 뒤에서 성실하게 기다렸을 것을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힙한가! 꾸준하기 어려운 시대에 꾸준하다는 것은 미련한 것이 아니라 변화를 따르는 것 못지않게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많은 노력을 들인 것은 모두 다 힙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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