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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절일기 > 김연수, 2019

by Ditmars 2021. 2. 5.

<시절일기> 김연수, 2019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집단적 무지 혹은 망각을 기반으로 축적된 부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부의 축적을 위해 한국 사회는 사회적 원인에서 비롯한 고통이라 할지라도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시켜 관리한다.

<p.63>

 

 사랑할 때 우리는 잘 모르다가 사랑을 잃어버린 뒤에야 거기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즉, 사랑은 사라진 뒤에야 보이기 시작한다.

<p.111>

 

 거울 속에 늙은 얼굴이 있다고 해서 그 거울이 그를 늙게 만들었다고는 볼 수 없다. 이 세계는 그 거울과 같다. 세계는 늘 그대로 거기 있다. 나빠지는 게 있다면 그 세계에 비친 나의 모습일 것이다.

<p.143>

 

 이 인생에서 내가 제일 먼저 배웠어야 하는 것은 '나'의 올바른 사용법이었지만, 지금까지 그걸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걸 모르니 인생은 예측불허,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이런 형편인데도 불운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게 다 '나'의 사용법을 몰라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다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납득시키기란 정말 어렵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스스로 납득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고 보니 더 그렇다. 쉰 살이 넘어서까지 자신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무지의 귀결은 역시 남 탓하기인데, 여기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배움을 멈추지 않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육체적으로 버거운 과제에 도전하는 게 제일 좋다. 일단 우리가 몸을 얼마나 잘못 사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면 마음의 오용에 대해서도 바아들이기가 쉬워진다.

 영국 <가디언>의 편집국장이던 앨런 러스브리저가 57세의 나이에 도전한 것은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연습해 일 년 안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연주하는 일이었다.

<p.153>

 

 사람들은 타인의 처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주는 것보다 받아야 할 것이 더 많은 셈이다. 관계의 문제는 바로 여기서 비롯한다.

<p.161>

 

 "잘못된 인연, 잘못된 행동, 잘못된 환경과 같은 그 모든 것들이 시인에게는 도구랍니다. 시인은 그 모든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해야 해요. 불행조차도 말이에요. 불행, 패배, 굴욕, 실패, 이런 게 다 우리의 도구인 것이죠. 행복할 때는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행복은 그 자체가 목표니까요."
 - 보르헤스

<p.169>

 

 내 쪽에서 애욕을 감출 때 나를 사랑하는 상대방은 불안을 느끼게 되는데, 이게 바로 감춰진 애욕이 받게 되는 보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에 빠진 남녀는 앞다퉈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말했다시피 사랑은 고백하는 순간 그 가치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고백한 쪽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 고백한 쪽은 초조해지면서 불안을 느끼게 되는데, 이 불안은 상대방이 내게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환영을 만들어낸다.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부터 느낄 수밖에 없는, 결코 해소되지 않을 이 불안으로 인해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그다음은 악순환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욕망을 끊임없이 해석해내야 한다.

<p.256>

 

 한국 사회의 비극은 전쟁을 통해 '인간은 모두 죽는다'라는 명제를 얻었으면서도 신은커녕 강대국 어디에도 '너희들 역시 언젠가는 선고를 받을 것이다'라고 항변하지 못한 채, 콤플렉스와 죄의식만 키워나갔다는 데 있다.

<p.280>

 

 대학 시절, 담배 연기는 눈에 보이는 한숨이라서 담배를 피운다는 여자 선배가 있었다. 같이 담배를 피우며, 한숨, 꼭 보여줘야 하나요? 라고 물었더니 바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차피 나만 아는 걸, 그게 한숨이라는 거...

<p.317>

 

 지훈은 이제 서른다섯 살이 되었다. 서른다섯 살이란 앉아 있던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가고 난 뒤의 빈 나무 같은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사방이 툭 트인 들판에 적막하고 고요하고 쓸쓸하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와 같은 삶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라고.

<p.329>

 

더보기

 같은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책을 읽고 작가에 대해 알아보던 중, 한 온라인 서점에서 <청춘의 문장들>과 <시절일기>를 같이 묶어서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전자의 책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어서 <시절일기>도 비슷한 책이겠거니 하며 냉큼 사서 읽어보게 되었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작가가 2005년부터 2018년까지 약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기 형식으로 적은 글들을 5개의 주제로 나눠 엮은 책이다. 작가의 말처럼 '생애전환기'를 겪은 이후의 글이라서일까, 책의 내용이 마냥 가볍고 즐겁지만은 않다. 오히려 삶을 비관적으로 보는 모습까지 보이는 듯하다. 전에 읽은 <청춘의 문장들>이 제목 그대로 찬란한 시기의 인생을 누리고 있는 청춘의 입장에서 기록한 일기였다면, 이 책은 인생의 중반을 넘어 삶의 고통과 사회의 부조리를 알게 된 입장에서 기록한 일기이다. 사회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둡고 힘들다, 다만 그 속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줄기 빛이 들어오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 작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여러 주제 중 하나는 세월호 사건인데 이 사건에 대해 작가가 깊이 분노하고 절망하는 모습에 나는 사뭇 낯설었고 놀라움을 느꼈다. 왜 그랬는가 하면 그전까지는 소설 작가가 사회의 구성원 중 한 명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판하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라면 으레 소설 속 비유를 통해 이야기로만 표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가이자 한 개인으로서 적은 일기를 모은 책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개인적 견해와 철학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작가는 세상에 대한 눈과 귀를 닫고 작품 속 세계에서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편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매일 일기를 쓴다고 했다. 그리고 그중의 일부는 다 쓰면 찢어버린다고 한다. 비관적인 감정이나 세상에 대한 화를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적고 그것을 찢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작가다운 스트레스 해소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일기를 쓰지 않지만 나도 일기를 매일 썼던 적이 있다. 바로 군대에 있던 2년 동안의 시간이다. 매일 적다 보니 전역할 때 노트 3권 분량이 되었는데 그게 그렇게 뿌듯하게 느껴졌다. 그때의 나에게도 일기를 쓰는 것은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던 것 같다. 작가와 다르게 다 쓰고 찢지는 않았지만 그 날의 아쉬웠던 점, 앞으로의 다짐 등을 적으며 내일도 힘을 내자,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대부분 몇 줄 쓰고 말았지만 한 달에 한 번 꼴로는 한 페이지가 넘도록 일기를 쓰게 되었다. 아마 한 달에 한 번 꼴로는 적고 싶은 얘기가 많아지는 날이 있었나 보다. 지금 그 노트 3권은 고향의 집 창고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것이 그때 나의 시절일기라고 생각하니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