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montaigne는 <수상록>에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잘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두 대통령의 글쓰기 힘 역시 생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정보는 널려있다. 따라서 글감은 많다. 구슬을 꿰는 실이 필요하다. 그 실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바로 생각이다. 생각이 글쓰기의 기본이다.
<p.27>
노 대통령 역시 글쓰기를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독서, 사색, 토론이다.
<p.42>
창조적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영감이나 직관과는 다르다. 죽을힘을 다해 몰입해야 나오는 것이 창조력이다. 열정과 고민의 산물이며, 뭔가를 개선하고 바꿔보려는 문제의식의 결과물이다.
<p.42>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voltaire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형용사는 명사의 적이다.' 꾸밀수록 알쏭달쏭해진다는 것이다.
<p.68>
횡설수설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할 얘기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쓰고 싶은 내용은 많은데, 막상 글로 쓰려면 잘 안 써진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쓰고 싶은 의욕만 있을 뿐, 쓸 내용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다. 할 얘기가 분명하면 횡설수설하지 않는다. 요점만으로 간략히 정리가 된다. 분명하지 않으니까 글이 오락가락 길어지는 것이다.
김동식 교수는 <인문학 글쓰기를 위하여>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생각의 길이와 글의 길이를 서로 같게 한다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생각을 충분히 드러내기에 말이 부족하면 글이 모호해지고, 생각은 없이 말만 길게 늘어뜨리면 글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p.68>
예컨대 '복지는 지출이 아니고 투자다'라는 명제가 있다고 하자. 복지는 사람에 대한 투자이고, 사람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야 지속적인 경제 발전과 양극화 해소가 가능하고 사회통합도 이룰 수 있다는 논리를 세우는 게 먼저다.
<p.85>
"기적은 기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 김대중
<p.122>
"쉽게 읽히는 글이 쓰기는 어렵다."
- 헤밍웨이
<p.178>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을 이긴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특히 그렇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실천했다. "단순화해라. 많은 것을 전달하려는 욕심을 버려라. 한두 가지로 선택하고 거기에 집중해라." 박학다식한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대통령은 알고 있었다. 최대한 절제했다.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식의 저주'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단순한 문제를 복잡하게 말하는 데는 지식이 필요하고,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말하는 데는 내공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는 것은 쓰고 싶다. 힘들게 쓴 것은 버리기 싫다. 지식의 저주는 마지막까지 글 쓰는 사람을 괴롭힌다.
<p.179>
"그 사람이 살아온 날들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갈 날들이 보인다."
- 노무현
<p.192>
김대중 대통령은 대화할 때 여섯 가지 원칙을 갖고 있었다.
첫째, 상대를 진심으로 대한다.
둘째, 어떤 경우에도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셋째, 상대와 의견이 같을 때에는 나도 같은 의견이라고 말해준다.
넷째, 대화가 끝났을 때는 '당신 덕분에 대화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해준다.
다섯째, 되도록 상대 말을 많이 들어준다.
여섯째, 할 말은 모아두었다가 대화 사이사이에 집어넣고, 꼭 해야할 말은 빠뜨리지 않는다.
<p.213>
"대화는 얼마나 말을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말을 잘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대화의 요체는 수사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심리학에 있다."
- 김대중
<p.215>
"나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백지를 한 장 갖다 놓습니다. 그리고 그걸 반으로 접습니다. 한쪽에는 어려운 일을 적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다행이고 감사한 일을 적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번도 한쪽만 채워지는 적은 없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사는 게 그런 것 같습니다."
- 김대중
<p.311>
최근에 많이 쓰는 말이 있다. 바로 "그러니까 내 말은..."이다. 예전에는 별로 써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요즘은 말을 하면서도 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꼭 말 끝에 "그러니까 내 말은..."을 붙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위한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위한 말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도 횡설수설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 점은 내가 잘 모르는 상대와 대화할 때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무래도 잘 아는 사람과는 '척하면 척'이 되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잘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 때는 좀 더 논리적으로 말을 하고 싶은 마음에 자꾸 말을 정리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렇게 횡설수설 말을 하다 보면 대화가 끝난 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는데...' 하면서 아쉬움이 남는다. 달변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말만 간결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책을 읽고 느낀 점에 대해 짧은 글을 쓰고 있지만 쓸 때마다 답답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은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모든 책이 내게 생각할 거리와 영감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든 책이 내게 생각할 거리와 영감을 주긴 하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모를 때가 많고 참으로 모호해서 콕 집어내기가 어렵다. 마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고, 책 속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지만 그것을 생각이나 감정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결국 '재미있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아마 이것은 책의 문제라기보다는 내 표현력의 한계에서 기인한 문제일 것이다.
아무튼 어찌해서 무엇을 써야 할지 정했더라도 그것에 관해 한두 줄 쓰고 나면 더 이상 쓸 말이 없어지곤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쓰고 싶은 글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문장을 적게 된다. 한마디로 분량을 채우기 위한 문장이다. 어느 누구도 내게 이 정도 길이의 글을 쓰라고 한 적은 없지만 최소 세 문단은 되어야 글을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꾸역꾸역 글을 쓸 때가 있다. 그렇게 다 쓴 글을 읽어보면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를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나의 말과 글에 아무 생각이 없으면 발전이 없을 테니 말이다. 논리적으로 말을 하고 싶고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논리적으로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평범한 30대 남자다. 글을 잘 쓰면 좋겠지만 못 써도 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나는 그냥 꾸준히 써보는 것이다. 내가 나의 말과 글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 것도 결국은 이 책을 통해 가능했다.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내 나름대로 정리한 좋은 글쓰기는 결국 주제에 대한 깊고 다양한 생각에서 나오고, 깊고 다양한 생각은 혼자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는 것에서 나온다. 얼핏 관련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마치 축구 선수가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 축구만큼이나 체력 훈련과 근육 운동을 중요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로 독서, 토론, 사색을 꼽은 것이 이해가 된다. 나도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한 뒤에 말과 글로 표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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