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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훈육을 그만둡니다 > 주부의 벗(엮음), 2019

by Ditmars 2021. 3. 20.

<오늘부터 훈육을 그만둡니다> 주부의 벗(엮음), 2019

 

 우리 사회는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저출산 시대가 된 탓도 있을 겁니다. 현대 사회는 어른이 살기 편한 사회, 어른이 아니면 대응할 수 없는 사회입니다. 특히 도시에서는 더 그렇지요.
 '아이니까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이 통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은 부모입니다. 사람들은 우는 아이가 있으면 "조용히 시키세요." 떠드는 아이가 있으면 "혼을 좀 내야죠!", 또는 "애초에 이런데 아이를 데려오지 마세요."라고 말합니다. (...)
 훈육해야 한다는 압박은 부모, 특히 엄마를 위협합니다. 남들에게 욕먹지 않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아이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게 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시선에 민감합니다. '엄마는 나를 싫어하는구나. 엄마가 좋아할 만한 착한 아이가 되지 않으면 미움을 받을 거야.'라고 생각하지요. 
 훈육은 자칫하면 있는 그대로의 아이 모습을 부정하고 다른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주 이런 부정을 당하다 보면 자신을 긍정하는 감정이 생기지 않습니다.

<p.4>

 

 유아기에 익혀야 하는 것은 뭐든 해 보고 싶어 하는 의욕과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 그리고 탐구심입니다. 이는 나중에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의욕으로 이어지고 아이 스스로 중심을 잡아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러한 능력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 아이는 무엇을 중심으로 살게 될까요? 아마도 타인의 평가일 겁니다. 엄마에게 "아이고, 착해라."라는 말을 듣기 위해 마음에 뚜껑을 덮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평가'와 '타인의 눈'입니다.

<p.31>

 

 반드시 훈육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육아 스트레스를 쌓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정말 싫다' 거나 '그만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솔직한 기분을 아이에게 전달해보세요. 훈육해서 아이를 바꾸려고 하면 달라지지 않는 아이에게 화가 나기 마련입니다. 달라지느냐 달라지지 않느냐는 전적으로 아이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부모로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치관을 아이에게 계속해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 겁니다.

<p.34>

 

 요즘에는 자신과 지인 이외의 사람은 모두 '풍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사람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이 그 증거지요. 떠드는 아이를 보아도 대부분의 사람은 '나는 풍경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혹은 '하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 또한 '풍경은 내 일에 관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p.51>

 

 하지만 요점은, '상황'을 바꾸는 것보다 '아이를 바꾸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겁니다.

<p.59>

 

 사자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냥하고, 목숨 걸고 먹이를 손에 넣습니다. 하지만 먹다가 배가 부르면 먹다 만 먹이를 남겨 두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아까우니까, 혹은 내가 힘들게 얻은 귀한 먹이니까 끝까지 먹어야지' 같은 생각은 없습니다. 세 살짜리 아이는 아직 상당 부분 동물적이어서 사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위가 작아서 금방 배가 차기도 하고 밥을 먹다가 갑자기 놀이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금방 배가 고파져서 돌아오기도 하고요.

<p.84>

 

 부모는 앞으로 곤란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금 당장 뭔가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나이와 상관없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저는 70대인데 아직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지팡이 100개를 준비하고 1,000개를 세워 놓아도 넘어질 때는 넘어집니다. 그러니 나중에 곤란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를 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진짜 곤란한 일이 생기면, 그때 고민하고 해결하면 됩니다.

<p.91>

 

 어떤 부모는 논의 없는 강요를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아이가 납득하지 못하는 일, 그리고 하지 못하는 일을 억지로 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하지 못하는 아이나 그걸 지켜보는 부모는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요?
 '편식', '돌아다니며 먹기', '늘어놓기'는 그 뿌리가 같습니다. 매일 같이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 입장에서는 불안할지도 모르지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면서 아이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다양한 가치를 접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창피를 당하거나 불편한 경험을 하거나 비웃음을 당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배우면 되는 겁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부모의 생각과 가치를 태도로서 드러내는 것 밖에 없습니다. 뭐든지 맛있게 먹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뭐든지 맛있게 먹으면 됩니다. 아이가 부모처럼 잘 먹게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부모의 가치관은 아이에게 전달될 테니까요.

<p.94>

 

 아이가 폭력을 휘둘렀을 때 저는 그 아이를 무조건 안아줍니다. 힘차게 끌어당겨서 포근하게 안는 것이지요. 그리고 제가 대신 그 아이의 기분을 말로 표현해 줍니다. "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었지? 그런데 친구가 빌려주지 않아서 정말 화가 났을 거야. 그래서 친구를 때린 거지?"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아이의 마음을 읽고, 그것을 말로 표현해주면 아이는 누군가가 자신의 기분을 알아줬다고 생각해서 일단 안심합니다. 그리고 개운치 않았던 자신의 감정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자기 기분을 아는 것이 배려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p.132>

 

 인생은 자기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해서 내 뜻대로 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로서 벽에 부딪히면 절망하고 고립을 택할 것이 아니라 관점을 바꾸고, 환경을 바꾸고, 누군가에게 기댑시다. 자기 선에서 해결이 안 될 때는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또한 부모로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일입니다.
 때로는 남에게 조금 신세를 져도 괜찮지 않을까요? 평생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치지 않고, 단 한 번도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으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자신도 누군가의 민폐를 받아주는 입장에 서게 되는 날이 있을 테니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맙시다.

<p.139>

 

 "저렇게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해도 되나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에게 논리를 따지면서 그것을 무조건 따르게 하는 방법이야말로 좋지 못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부모 명령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가요? 그러지 않으면 나쁜 아이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아가 싹트는 네 살에도 항상 엄마 말대로만 하는 아이가 있다면 저는 그 아이가 더 걱정입니다. 당신의 목적이 아이가 당신을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쪽으로 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쪽'으로 가도록 아이를 잘 꾀어 봅시다.

<p.165>

 

 부모가 잔소리하면 할수록 아이는 흘려듣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 
 여러 번 말하지 않으면 들은 척도 안 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아이는 아무리 말해도 움직이지 않지요? 그렇다면 말을 하든 안 하든 결국 결과는 똑같은 거 아닐까요?

<p.176>

 

 부모는 아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알려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걸 할지 말지는 아이가 본인의 의지로 정해야 합니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도 있으니까요. 초조해하지 말고 지켜보세요.

<p.179>

 

 누가 봐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아이에게 양보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니요, 반드시 양보해야 합니다. 대부분 상황에서 자신에게 양보하는 부모님이 어느 것 하나만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해 봅시다. 그 'NO'의 위력은 절대적입니다. '아빠는 이것만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하면 아이도 부모의 판단을 납득하고 따릅니다. 따라서 아이에게 'NO카드'는 쉽게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

<p.181>

 

 "아이들은 '위험하고, 더럽고, 시끄럽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어른들은 억지로 '안전하고, 깨끗하고, 조용하게' 만들려고 하죠."

<p.186>

 

 유아기 아이를 보살피면서 훈육해야 한다는 압박에 휘둘려 자녀의 일생 가운데 가장 귀여운 시기를 놓치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나요?

<p.187>

 

 '부모의 가치관을 아이에게 우직하게 전달한다.'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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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주제를 다룬 파멜라 드러커맨의 <프랑스 아이처럼>과 비교한다면 이 책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아이처럼>은 '카드르'를 통한 훈육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아이와 규칙을 정하고 제한된 범위 내에서 자유를 주는 통제에 관한 얘기였다. 그러나 이 책은 그보다 덜 통제하는 방식으로 훈육을 알려준다. 아니, 오히려 책의 제목처럼 아이를 통제하려 하지 말고 훈육을 그만두라고 조언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육아를 대하는 두 책의 온도 차이가 꽤나 크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렇기 때문에 상반된 의견들 중 부모의 가치관에 맞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각각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책을 읽다 보면 은연중 작가가 본인의 얘기를 하는 지점이 나오는데 바로 이 부분이다. '저는 70대인데 아직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작가가 70대의 할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책에서 드러나는 따뜻함이 어디서 왔는지도 알 것 같았다. 이 책을 통해 그녀는 따뜻한 눈으로 작은 아이를 바라보고, 또 그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어린 부모를 바라 보며 "그렇게 완벽하게 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

 

 지금껏 자녀를 키우고, 자녀의 자녀도 키우며 오랜 인생을 산 할머니가 봤을 때는 사랑해주기만 해도 너무나 짧은 아이의 어린 시절에 훈육을 하겠다며 아이를 들들 볶는 부모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던 것이 아닐까. 그녀의 말처럼 어차피 아이는 금방 크고, 크면 다 좋아지는데 요즘의 부모들은 당장 눈 앞의 아이의 말과 행동에 조급한 마음이 들어 아이와 불필요한 실랑이를 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청춘이 그렇게 빨리 지나간다는 사실을 지금 알았더라면 더 많은 것을 해보고 더 많이 사랑할 걸, 하며 후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육아를 할 때 '내가 70대 할머니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상상을 종종 한다. 그리고 이런 상상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나를 조금 더 너그럽게 만들고 여유를 갖게 도와 준다. 자칫 훈육과 통제에만 몰입할 뻔했던 나의 생각에 다른 시각을 보여준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 만화라 읽기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