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터져난 눈물은 마음을 한결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울음을 터뜨리기 전까지만 해도 일어난 일을 부인하던 마음이 울음을 계기로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총동원해. 그 문장을 통해 그는 세상에는 아무리 모든 것을 총동원해도 이뤄질 수 없는 꿈이 있다는 걸 납득했다. 눈물이 흐르고, 그 다음에 우울이 지나갔으며,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슬픔을 납득했다. 그런 일을 겪고도 자신은 살아남았으므로 또 뭔가를 배워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히면서도 위로했다. 그렇게 해서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그는 집에 있는 책을 한 권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내용이나 주제가 무엇인지는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한 때 자신도 지녔음 직한, 소설에 나오는 순진한 기대나 막연한 소망의 문장들을 하나하나 버리고 자신에게 닥친 슬픔을 배워가는 일이었다. 이제는 그가 소유할 수 있는 삶이란 그런 것들뿐이었다. 하룻밤을 보내는 데에는 가로쓰기로 인쇄된 책이라면 두 권, 세로쓰기로 인쇄된 책이라면 한 권 반 정도가 적당했다. 그보다 적은 분량이면 어김없이 새벽을 뜬눈으로 지새워야만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 속도가 원칙이 됐다. 그러는 동안, 그는 몇 개의 문장을 더 찾아냈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김연수, p.47>
밤에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낮에는 어두운 방에서 잠만 자는 그를 가족들은 그냥 내버려뒀다. 어차피 집에는 책이 그다지 많지 않았는 데다가 뭔가에 빠져 있을 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거기서 다시 빠져나올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두 달 만에 그가 학교에 가봐야겠다고 말했을 때, 아침밥을 먹고 있던 식구들은 아침에 그를 볼 수 있어서 반갑다는 마음에 더해 이제 모든 게 다 지나갔구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김연수, p.48>
1학년 겨울방학에 산악부에서 설악산에 동계등반을 갔었어요. 그때만 해도 형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신입부원들 사이에서는 형이 무서워서 몰래 도망가려던 애도 있었어요. 그때 등산화를 텐트 바깥에 내놓고 잠을 잤다고 해서 형에게 얻어터진 적이 있었죠. 때리고 나서 형이 신입생들에게 물었어요. 아프냐? 우린 당연히 안 아픕니다, 라고 소리쳤고요. 그때 형이 그랬어요. 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산악인은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게 설사 죽음이라고 하더라도. 진정한 산악인은 그 모든 거짓말에 맞서기 위해 산에 오른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김연수, p.55>
내 경우, 사람이나 사물 혹은 오랫동안 살아온 장소까지도 그것들이 품어내는 어떤 기운과 정서가 몸속에 스며들어 나 자신의 한 부분을 형성해버리는 것 같다. 나도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환경을 쉬 바꾸지 못하는 천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래된 인연이라고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익숙해지다 지겨워질 때쯤이면 사람이건 사물이건 대상의 뱃속까지 훤히 꿰뚫는 마당이어서 그리 큰 감흥이 없을 때도 많다. 다만, 그것들마저 없다면 절해고도의 수인 신세로, 내가 더 답답할 줄 뻔히 알기 때문에 끈을 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편이다. 그렇게 사람이든 직장이든 쉬 떠나지도 못하고, 새 사람을 제대로 사귀지도 못하면서 인생의 가운데 토막을 지나왔다. 이제는 새장의 문을 열어놓아도 밖으로 날아갈 줄 모르는, 퇴화된 날개 근육을 지닌 가여운 늙은 새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많은 인간들이 내 곁에 머무르다 떠나갔다. 의욕적으로 일하던 후배들도 조금 쓸 만하고 정을 붙일 만하면 영악하게 밥그릇이 큰 곳을 찾아 떠나갔다. 한동안은 뒤에 남는 게 갑갑하여 무조건 사표를 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제는 그마저도 익숙해져 심상한 풍경이 돼버린 듯하다. 그만큼 감성이 풍화됐고, 체념에 익숙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엉뚱하게도 주변 풍경들이 자꾸 내 발밑을 판다. 작별 인사도 없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밥집 때문에 적잖이 허전했다.
<신천옹, 조용호, p195>
군복무중에 알게 된 책이다. 알게 되었다기보다는 정말 읽을만한 책이 없었기에 그런데도 정말 뭐라도 읽고 싶었던 마음에 읽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된 이후 첫 몇 달은 참 외로웠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이등병과 일병에게 제약되는 일들이 참 많았고 이미 전역을 앞두고 호형호제하는 선임들 사이에 같이 있긴 했지만 마치 남인 것처럼 나를 대하는 분위기는 숨이 막힐 듯했다. 그 공간과 사람들이 낯선 건 내가 유일했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맞선임 정도였지만 친한 듯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내게 못되게 굴어야 했던 그 사람에게 뭔가를 바랄 수도 없었다. 다들 자고 있는 아침 불 꺼진 내무반에 혼자 각 잡고 앉아 있던 나는 참 외롭고 힘들었다.
근무 중 교대시간에 잠깐의 짬이 생기면 혼자 있고 싶었다. 계속 외롭고 혼자였지만 그거랑은 다르게 아무도 없는 곳에 있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러면 나는 몰래 책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 읽곤 했다. 다행히 미군과 같이 쓰는 건물이라 화장실이 많고, 넓고, 밝았다. 장병들을 위해 책을 꽂아 놓은 책꽂이에는 비루한 자기계발서들과 판타지 소설 외에 읽을 만한 책이 얼마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평소라면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처음에 내가 군대에서 느꼈던 외로움을 얘기한 건 대상수상작인 김연수의 글이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 글을 통해 꽤나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바는 이러하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다양한 방식의 외로움 혹은 고통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삶에 아무런 고민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인생은 사람들과 같이 산책하는 것과 같다. 각자의 고통을 옆에 데리고서. 그리고 산책은 고통을 달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외롭고 힘들던 나는 이 책을 계기로 산책을 나설 수 있었다. 잔뜩 긴장한 몸을 편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곳이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졌던 건 군대라는 곳의 특성도 있었지만 내가 내 주위로 쳐 놓은 벽 때문이기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친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친해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점차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아졌다. 소설의 표현처럼 이따금씩 코끼리가 내 가슴을 누르듯 외로울 때가 오긴 했지만 견딜만했다. 외로움을 데리고 다른 사람들과 산책을 하자 그 순간만큼은 외로움이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그 안에서 전역을 앞두고 부럽기만 했던 선임들이나 내 밑으로 들어온 후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렇듯 삶을 살면서 내가 가진 어려움, 컴플렉스, 고통 등을 이겨내는 방법은 방 한구석에서 혼자 그것들과 싸워보겠다고 고민하고 답답한 밤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 산책하듯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각기 다른 고통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데리고 다니는 다양한 종류의 사마귀라던지 지렁이, 곰 등을 보며 내가 데리고 다니는 코끼리가 별반 다를 것이 없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들을 데리고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타인을 보며 나 스스로도 많은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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